산 다미아노 십자가

1980년대에 처음 묵주기도를 시작했던 린 바우만 신부님의 묵주에서 산 다미아노 십자가를 볼 수 있다.

노랑과 주황의 밝은 색으로 빛나는 이 십자가 모양의 이콘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는 듯하다. 이 이콘에 대한 이야기는 성 프란시스의 젊은 시절에서 시작된다.

프란시스는 전쟁과 포로 생활로 건강을 잃어 거의 죽음에 이르렀으나,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로 회복되었다고 한다. 몸이 허약하고 영적으로는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은 그는, 그가 그동안 추구해 온 것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느님께 더 많은 시간을 드리고, 더 마음을 열어 드렸을 때,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이 낫자, 그는 아시시의 숲과 작은 예배당 근처를 거닐면서 생각하고, 기도하고, 그에게 곧 무슨 말씀을 하실 것 같은 그 분 앞에 머물렀다.

그가 자주 갔던 곳이 산 다미아노 교회였는데, 성벽 밖 벼랑에 반쯤 무너진 채 방치된 곳이었다. 이 폐허에 실물 크기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아이콘이 달려 있었다. 1206년 여름 어느 날 그 근처를 걷다가, 안으로 들어와 기도하라는 영적인 이끌림을 느끼게 되었다. 이 내면의 소리에 따라, 그는 계단을 내려와 어두컴컴한 작은 예배당에 들어와, 낯익은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께서 무슨 분부를 하실지 기다렸다.

기다림의 간절한 마음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평온한 얼굴을 바라 보았을 때,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님의 눈은 감겨 있었다. 그는 기도하였다. “지극히 영화로우신 하느님, 제 마음 속 어둠을 비추소서. 옳은 믿음과, 확고한 소망과, 온전한 박애심, 분별력과 지식을 주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거룩하고 참된 명령을 수행하게 하옵소서.” 지극한 고요 가운데 그는 이 기도를 반복하면서, 마음 속에 못 다한 기도가 이 한 마디에 담겨 나올 때까지 계속 하였다.

어느 새 아이콘의 눈은 떠 있었고, 프란시스를 향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 움직임은 그에게 놀랍기 보다는 매우 자연스러웠다. 그 때 십자가에서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 왔는데, 그것은 착하지만 말귀가 어두운 어린 아이에게 아버지가 일러주는 그런 목소리였다. “프란시스야, 나의 집이 무너져 있는 것이 보이지 않니? 나를 위해 이 집을 다시 지어 주렴.”

그것이 그의 사명(mission)이 되었다. ‘주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는 그 무너진 건물을 다시 지어, 예배 공간으로 재건하였다.

산 다미아노 십자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십자가에 매달린 시신이 아니라, 영원 불멸하신 하느님께서, 생명의 원천으로서 부활의 소망을 빛으로 발하고 있다. 구주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눈빛은 연민을 품은, 그러나 왕과 승리자의 강인함을 담고 있다. 손은 십자가에 매달려 있기 보다는 우리를 위한 탄원과 축복의 손길로, 평온함과 부드러움을 나타내 준다. 십자가 죽음의 공포가 아니라, 영원한 삶의 고결함과 평온함을 보여 준다.

십자가 위에는 천사들에 둘러 싸여 승천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손 주변에는 그분의 놀라우신 희생에 대하여 전하고 있는 천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 곁에는 왼쪽으로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 오른 쪽으로 막달라 마리아, 글레오파, 백인대장과 예수께 고침받은 그의 아들이 서 있다. 그 아래의 작은 인물로 왼쪽에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병정, 해면에 초를 묻혀 긴 막대기로 예수께 권했던 인물이 그려져 있다.

예수의 무릎 오른쪽에 닭이 그려져 있는데, 베드로가 세 번 예수를 부인하고 닭이 울 때에 통곡하였던 이야기를 상기시킨다. 발 밑에는 성인들의 그림이 있었으나 지워져 흐릿하게 되어 있다.

산 다미아노 십자가를 새로 고안한 묵주에 달며 린 바우만 신부는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그토록 십자가를 사랑하고 응시했던 프란시스와 클라라를 생각했을까, 영원한 생명의 빛을 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했을까. 십자가를 묵상했던 오래된 찬미의 가사를 떠올려 본다.

“우리는 흠숭하고 찬미하나이다.
그리스도여.
당신은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속하셨나이다.

팔목에 지니도록 만든 묵주

목걸이나 팔찌로 쓸 수 있는 묵주들이 있다. 보통 가방이나 주머니에 지니고 다니는 것에 비해, 몸에 지니는 경쾌함과 색다를 느낌이 있다.

‘기도는 하지 않으면서 매일 머리 맡에 묵주만 놓아 두면 뭘해요’라고 어머니에게 묻곤 한다는 어느 청년에게, ‘그냥 지니는 것도 기도가 되지 않을까 ‘ 하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최소한 20분씩 매일 꾸준히 기도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고 싶다.

그래서 가능하면 직접 기도를 드릴 때 손이 얼마나 편한가를 늘 생각하게 된다. 이번에 만든 묵주는 두 겹으로 손목에 끼울 수 있는 형태로 만들었다.

팬던트 형으로 달랑거리는 멋도 있겠지만, 십자가를 묵주의 원 속에 넣었다. 기도는 십자가에서 시작해서 십자가로 끝나지만, 기도하는 동안 십자가는 주간 구슬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실은 두 가닥을 쓰고, 매듭은 큰 간격에 14번, 좁은 간격에 5번 사용하였다.

응용: 꽃과 나뭇잎

성공회 묵주 이야기

7월 1일 새로운 달… 장마의 한 가운데 있어야 할 시기이건만 무덥기만 하다.시원한 빗줄기가 오히려 그립다. 오늘도 헐레벌떡 교회선교회로 향하여 들어왔다. 여전히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가끔 정해진 일이 없다는 것은 가장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다.

큰 주제는 정해졌지만 어떤 내용으로 글을 쓰고 어떤 색깔과 구도로 그림을 그려야 할지 정하지 못한 작가와도 같다고 할까? 신부님이 오늘 제안한 공부는 Lynn. C. Bauman 이 쓴 [성공회 묵주]이다.  5일전 성공회 묵주 blog를 만들어 주셨는데 ,  blog를 방치해 두었더니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성공회에서는 초기의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에서 사용했던 묵주기도서와  묵주들을 사용하였다가 정교회나 가톨릭 교회와는 다른 기도를 시도하려는 의도로 명상기도를 모색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더 전통적이고 오래된 기독교의 상징을 더하여 새로운 형태의 기도와 새로운 형태의 묵주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Lynn Bauman에 따르면 묵주기도는 하느님께 드리는 봉헌(offering)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는 묵주기도가 작은 성무(Little Office)라고 하였다.

성무(거룩한 의무)란, 수도원에서 3시간 마다 하루 8번씩 드리는 예배로서, 성공회의 아침기도(조도)와 저녁기도(만도)의 원형이 되었으며, 또한 개신교 예배의 원형이기도 하다. 수도원에서 발전된 이 예배는, 시편 교독(교송)으로 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원을 따지자면, 유대교 회당 예배에서 시작하여 초대교회 평일 예배양식으로 발전 되었다. 참고로 유대교 성전 제사는 기독교 성찬 예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성무는 주로 노래로 부르는데,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그레고리고 성가 음반을 통하여 들어볼 수 있다. 시편을 노래로 부를 때에는 각 절을 번갈아 교독(교송)하지만, 성공회 묵주기도는 대개 같은 구절을 반복하면서 깊이 들어간다.

그러므로 성공회 묵주기도는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 그것도 성경말씀(주로 시편)으로 드리는 예배를 단순화시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공회 묵주로 기도하는 시간은 하느님께 찬양하는 시간이며 예배하는 시간이며, 온전히 그 시간을 하느님과 함께 하는, ‘거룩한 낭비’의 시간이다. 마치 예수님 발 앞에 향유를 부은 여인과 같이 귀중한 시간과 마음을 하느님께 드리는 시간이다.

성공회 묵주와 상징들

산 다미아노 십자가고상(성 프란시스 십자가고상), 일주일을 상징하는 7개의 구슬 4그룹과 4개의 십자가고상 구슬, 초대구슬 1개를 모두 합한 33개의 구슬로 만들어 진다. 7개의 구슬 사이에 있는 과 구슬사이에 있는 4개의 십자가고상 구슬은 성스러운 시간으로의 초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영원성으로 나아가는 것을 중요히 여긴다. 십자가고상 바로 위에 있는 초대구슬은 우리들을 십자가로 인도하여 영적 여정의 구원자로서의 예수님을 따르게 하는 상징을 지닌다

* 성 프란시스 십자고상 –  샌 다미아노 십자가라고도 하는데, 동방기독교의 전통적인 성상에 기원하였지만 서양에서는 성 프란시스에 의해  사용되었던 고상으로 다른 페이지에서 더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으니 참조 하시기 바랍니다.

*초대 구슬 – 십자가다음에 오는 초대구슬은 작은 성무 , 하느님께 찬양과 경배로의 초대. 작은 성무로의 초대를 상징한다..

*4개의 십자 구슬 – 이 십자가고상 구슬은  7개의 週구슬을 나누어 주는 구슬로서 우리의 믿음인 십자가의 중심적 상징이 된다.

*주간구슬 – 일주일을 상징하는 7개의 구슬: 창조의 7일, 속세의 일주일, 교회력의 7절기를 상징한다.

성공회 묵주의 근본적인 상징은 시간의 수레바퀴를 상징하는  구슬들의 고리이다. 이 고리는 우리의 영적여정을 상징한다. 묵주는 주님과 구주로서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영적 순례를 상징한다.

이 고리들은 춘분, 하지 추분, 동지들의 1년 절기를 상징하고,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자비와 희생의 중심 상징뿐만 아니라  분리나 갈등이 없이 인간과 하느님을 하나로 함께 하는 것을 상징합니다.그리스도는 시간을 초월할 뿐 아니라 시간의 고리로 부터 우리들을 들어 올려 순수하고 영원한 시간속으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묵주기도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를 통해 영원하고도 순수한 현존으로의 여행을 생각하면 침묵으로 드리는 기도이다.

묵주기도를 드림으로써  세속적인 절기뿐 아니라  대림절, 성탄절, 공현절, 사순절, 성주간, 부활절, 오순절의 교회 절기속으로  우리들을 인도한다.

묵주에 나타난 數의 상징은 완성의 수들이다.

성공회묵주에 사용된   7개의 주간 구슬은 성공회 묵주에서 4 번 반복되는데 이것은 한달을 의미한다.  유대 기독교의 전통에서 7이라는 숫자는 영적 완성 혹은 완벽을 나타내므로 묵주 기도자는 완성을 위한 기독교인의 호소이기도 하다.

성공회 묵주기도는 33개의 구슬을 3번 반복하는데 이 3번은 성삼위 일체를 상징하며, 99는 중동전통에서 신성한 이름들의 완성된 수를 상징한다.

99개의 구슬에다 십자고상을 추가하면 전체 수는 100이 되는데 , 이 100이라는 수는 정교회 묵주에서 창조의 완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와같이 성공회 묵주안에 있는 각각의 상징들을 생각할때 관상 기도는 이들 묵주가 가지고 있는 각 상징들에 의해 풍성해지고 강화되어지며, 기도자들을 집중시켜 하느님의 현존안으로 빠르게 인도한다.

큰알 나무 묵주

일반적으로 묵주하면 나무 묵주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저는 처음에 구슬 묵주를 만들기 시작 하였습니다. 구슬 묵주는 구슬 묵주 대로 나무 묵주는 나무 묵주대로 각각이 주는 느낌과 마음의 무게들이 다릅니다. 여기 올리브 묵주는 나무 묵주의 마지막 단계에서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보면 볼수록 나무의 질감과 색깔이 친숙하게 와 닿았습니다. 십자가는 이탈리아에서 직수입한 십자가입니다. 올리브나무 테두리에 금속 십자가가 장식되어 고급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다음에 보여 드릴 묵주는 붉은 대추나무알 묵주 입니다.  붉은 대추나무알 묵주는 올리브나무 묵주를 준비하다가 십자가를 선택하는 과정에 우연히  발견한 십자가의 느낌이 좋아  십자가에 맞는 나무알을 선택하다가 찾은 소재입니다.

무광 대추나무 알 묵주는 나무 소재의 묵주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처음 만든 소재입니다.광택이 없는 느낌의 부드러운 색감과 질감이 마치 화장을 하지 않은 소녀의 풋풋함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성공회 묵주 사랑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안녕하세요.

우연한 계기로 묵주를 만드는 친구를 보다가 저도 성공회 묵주를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내일 드디어 지난 3개월 정도 만들어 왔던 묵주를 여러 교우님들께 전시 하려고 합니다.

전시전에 신부님께 보여드렸더니 갑자기 블로그까지 만들자고 하셔서 생각하지도 않게 그동안 만들어 왔던 것의 작은 흔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든 작품들이어서 부끄럽고 부족한 것이 많겠지만 더 큰 발전을 향한 첫걸음이게에 의미가 있는 내디딤이 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묵주를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시고 이 블로그까지 발전할 수 있도록 해 주신 나성권신부님께 감사 드립니다.

2010년 6월 26일

베로니카